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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재섭 詩情

제목

문틈으로 들어가는 황소를 본 적이 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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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재섭
등록일
2023-07-08 23:25:06
조회수
21
문틈으로 들어가는 황소를 본 적이 있다
변재섭


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사람이 활짝 열린 대문을 통과하는 것이 더
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손톱여물 썰고 있다가 문틈으로 들어가는 황소를 본
적이 있다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번개보다 빠르게 방안으로 들어간 그는 새우
처럼 웅크리고 있는 사내를 눅신하게 밟아대느라 기나긴 밤을 사흘이나 꼬박 새
웠다 대낮인데도 사내는 꼼짝 못하고 끙끙 앓다가 한동안 꼬리 없던 죽마고우에
게 발굴돼 병원으로 후송되고 며칠 지나 돌아온 사내의 방안은 온기가 가득했다
이후로도 황소는 방에 소리소문 없이 들었으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무료를 달
래야 했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도란도란 구공탄 불꽃같은 소
리의 온기가 초병처럼 맴돌다 늦은 밤 돌아가면 사내는 반듯하게 누웠을 뿐 아침
이면 황소처럼 문을 밀고 나갔을 뿐



- <문학춘추> 2023년 여름호
작성일:2023-07-08 23:25:06 59.0.135.145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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